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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

단군이야기

단군에 관한 기록은 매우 짧은 문장으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우주를 이루는 기본요소,

곧 하늘, 땅, 인간 이 모두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묘사되는것이 하느님에 대한 것이다.

책에따라 환인, 환국 등으로 달리 표현되기는 하지만 이는 그리 큰 문젯거리는 아니다.

단군 이야기와 같이 신화적으로 윤색된 내용을 실증적 사고에 기반한 문법체계로만 해석한다면 신화적 상징이

담고 있는 풍부한 내용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보자면 하늘나라에는 천국이나 천당으로, 하느님이라면 천체나 상제로 표현되어야한다.

그런데 단국 이야기에서는 환 이라는 글자를 썼다.

여기서 환이라는 글자를 써야만 하는 필연성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환은 굳세다, 밝다, 빛난다 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환과 한은 발으이 비슷하다

한은 크다 넓다 는 뜻을 가지고

한을 풀어쓰면 하늘이 되기도 하고 하나가 되기도 한다.

곧 우리가 갖고 있던 태초위 하늘 또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관념은 크고, 넓고, 밝고, 빛나는 공동체라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않다.

여기에서 크고, 넓다는 공간의 무한함을 의미하며,

밝고, 빛난다는 질서의 원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현재 국호인 대한민국의 근원도 환국에서 찾을 수 있다.

대는 수식어고, 민국은 청치체제이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고유단어는 한 이다

태초에 우리 민족에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환국이 현대 한국의 뿌리가 되었다고 유추 해볼수 있다.

크다, 넓다, 밝다는 의미는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난생설화의 상징성과 의미 연관을 가질 수 있다.

알은 둥들고 희다.

그리고 흰 것은 바탕색으로서 근원을 상징한다.

그런 알에서 나온 대표적 인물이 박혁거세다.

박혁거세는 밝은 지도자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다.

라이언 킹 이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그 영화를 보고 나는 만화라는 매체의 힘과 예술성에 감탄했다.

 

내용이야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 상투적인 권선징악의 범위를 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낙원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낙원의 왕은 사자다. 첫 장면에서는 대를 이어 왕이 될 새끼 사자를 점지하는 의식이 성대하게 평쳐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난을 겪던 새끼사자가 마침내 어엿한 어른이 되어 왕위에 오른다.

그런데 사자는 포식동물이어서 사슴이나 얼룩말 등을 잡아먹는다.

그런 사자인 심바가 왕이 되는데 심바에게 잡아먹힐 운명인 사슴과 얼룩말이 춤 추고

노래하며 환호한다.

아이러니다. 미련해서일까?

환호하면 잡아먹지 않겠지 하는 기대 때문일까? 이런 의문을 갖고 단군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자.

삼국유사에 실린 단국 이야기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한 굴에서 살았는데 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얼룩말과 사슴이 심바를 보고 환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곰과 호랑이는 앙숙관계고 사자와 사슴은 먹고 먹히는 관계다.

그런데 세계의 원래 모습은 앙숙이 한집에서 살지 못하고,오순도순 살아가며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한 울타리에서 공존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앙숙이 한집에서 살지 못하고,  먹이사슬이 깨지는 데 있다.

앙숙이 한집에서 산다는것은 조화와 균형이 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앙숙이 한집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대립물의 대대를 전제로한다.

왕위를 차지하려는 심바의 삼촌 스카가 얼룩말들에게 비난받는 이유는 그가 먹이사슬의 균형을 깻기 때문이다.

단군 이야기에서 그리는 이상세계란 바로 자연이 균형을 이룬 세계다.

그런 세계가 곰과 호랑이가 한 굴에서 살아가는 낙원으로서의 신시다.

신시는 환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온 태백산 꼭대기로서 공간적인 의미도 있고, 하늘과 인간의 매개 장소 혹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공동체를 의미하는 상징성도 있다.

 

지금은 금지되어 있어 볼 수 없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북한산을 오르다 보면 봉우리마다 기돟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몇시간이나 있었는지 바람을 막는다고 온몸에 비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취사도구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아 며칠 밤을 지새운 듯한 사람도 있었다.

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산으로, 산으로 로르는 것일까?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 피를 토하는 기도를 올린 것을 따라 성지순례 프로그램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것을 포함 시키기도 한다.

인류의 보편적 심성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북한산 봉우리를 메우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열광과 정열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 민족은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빌고 기도했을까?

장돋개, 마을 어귀의 장승, 산 중톡의 당나무, 솟대 산 정상 등이 떠오른다.

여러 곳 가운데 가장 권위 있으며 온 나라, 온 민족의 발원을 모으는 장소는 아무래도 산 정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산 정상 에서하는 기도는 대상을 하늘에 두기 때뭄이다

산으로 산으로 오르는 것은 하늘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산신령이나 삼신할매에게 기도하려면  산 아래나 중턱이면 족하다.

산 정상에서 하는 기도는 산신령을 밟고 하는 기도고 그 대상은 하늘 밖에 없다.

적국 명산의 정상에 남아 있는 기도 터의 흔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민족 최초의 기도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항상 신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곰 여자가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가 있기를 빌고 빌었다.

 

 

이대로라면 기도를 하는 데 단수, 곧 신령스러운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목은 이 땅의 기원과 소망을 하늘에 전달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장승, 솟대 등으로 면형되었다.

또 중요한 것은 신목이 있는 곳이다.

우리 민족의 신목은 산 꼭대기에 있다.

산은 환웅이 무리와 함께 인산 세상을 위해 첫발을 디딘 곳이며 신시를 이루어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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