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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

최제우 3

시천주의 주자를 존칭해서 부모와 같이 섬긴다는 것이라 했다.

곧 한울님 모시기를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하라는 말이다.

최제우는 네 몸에 모셨으니 가까이에 있는 한울님을 버려두고 멀리서 찾으려 한단 말인가 라고 했다.

이는 집에 부모가 계신데 밖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집안에서 잘 모셔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주를 밖에서 찾지 말고 내 몸 안에 모시고 있음을 알고 섬기라는 뜻이가.

 

또한 모든 존재는 천주를 모시고 있는 존재다 라는 말은 내가 한울님의 영기로 태어나 그 안에서 살지만, 동시에 한울님 역시 내 안에 살고 계시면서 나의 지극한 정성과 정성을 다해 소원하는것에 감응하고 응답한 ㄴ 실재임을 온전히 깨달아 한울님을 지극히 공경하고 받을어 모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최제우가생각한 진정한 경천이며, 시천주의 의믿.

이렇게 시천주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거룩하고 신령하다는 새로운 인간 이해를 열어놓을 수 있었다.

 

시천주는 한울님에 대한 인간의 가장 참된 태도다. 동학은 시천주와 함께 성 경 신의 마음공부도 그에 못지않게 중시했다.

최제우는 동학의 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성 경 신 게 자뿐이라고 했다.

득도의 체험과 함께 평소의 수양을 중시함으로써 궁극적인 깨달음과 마음의 수양을 동시에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제우는 한울님 에게 받은 부적을 태워 물에 타서 마시고는 몸이 건강해지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 그런 것이 아니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가가하게 되었고, 정성스럽게 하고 또 정성스럽게 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았다. 그러나 도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받은사람의 성과  경 때문이지 않겠는가 라는 결론을 얻었다.

만일 지금 이런방법으로 아픈 곳을 치료한다면 십중팔구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과학적으로 효과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최제우가 말하고자 한 것은 실제로 병이 낫는가 그렇지 않은가보다는 정성을 다해 한울님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ㅣ제우는 성과 경 두 글자를 굳게 지켜 한울님을 공경하면 이라고 말했는데 성경을 굳게 지켜 라는 말은 정성과 공경을 다하다 정성스럽게 공경한다는 의미다.

정성스럽게 공경한다는 것은 모든 의심을 버리고 한울님을 믿는 것이고, 한울님에 대한 의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정성스런 마음을 가지고 한울님을 공경하는 것이 성경이다.

 

처음 도에 들어와서 한 번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개과천선하여 삼가 영원히 모신다는 것을 깊이 맹세하는 것이다.

축문을 읽는 것은 덮어주고 실어주는 은혜와 비추어주는 덕을 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도리가 있는것이 아니라 다만 신 경 성 석 자에 있을 뿐이다.

 

동학에 입도해 제사를 지내고 축문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최제우는 이러한 의식에 필요한 자세와 한울님을 모시는 데 필요한 마음이 신 경 성 이라고 했다.

신은 한울님에 대한 믿음으로, 한울님을 굳게 믿고 변함 없이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맹목적이면 안되며, 자각적인 굳은 믿음이어야 한다.

경은 한울님에 대한 공경이다.

경은 사람이 한울님과 통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행동이다.

성은 한울님에 대한 정성이다.

신성한 존재즐 대할 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태도다.

그러므로 신 경 성 은 한울님께 마음과 몸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신앙의 근본 태도다.

이 점에서 최제우가 한울님이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몸에 영기로서 실재한다는 것과 한울님을 믿는 자들은 그 존재를 온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인격에 근원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싷하고 공경심만 있다면 사람은 모두 한울님과 같은 존재다.

곧 성과 경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천민이라도 모두 군자요 성인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양반이라도 참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울님이 내게 모셔져 있다는 인식은 동학교도들의 인간관 역사관 사회관을 바꾸어놓았다. 한울님을 모신 조선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문화의 틀을 새로 짜는 개벽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후천개벽

 

개벽이란 암흑과 혼돈에서 천지가 처음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학에서 말하는 개벽은 자연과 우주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크게 병들어서 새로운 세상이 다시 열린다는 뜻이다.

곧 운세순환의 큰 주기가 다시 시작되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최제우는 역사를 크게 두 시대로 나누어, 지나간 세상을 선천이라 하고 동학이 창도된 이후의 새 세상을 후천이라고 했다.

낡은 선천의 세상이 무너지고 후천의 새 ㅅ상이 열린다는 뜻으로 동학에서는 후천개벽을 주장한다.

 

최제우는 우리 도는 후천개벽의 오만 년 무극대도 라고 했으며 최제우의 뒤를 이은 2대 교주 최시형은 지금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살마드는 시기여서 세상이 크게 혼란하리라 했으며 3대 교주인 손병희는 후천개벽의 시기에 처한 우리는 각자 정신개벽부터 해야한다 고 했다.

그러므로 동학의 후천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동학은 평등하고 스스로 각성한 개인을 발견하고 있다.

신분데 사회에서 동학의 이같은 평등 주의 사상은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지배층에게는 그야말로 천지가 뒤바뀌는 주장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소리였다.

실제로 동학에 입도한 김구는 상놈 된 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로서는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고.......

...정치의 부패함에 실망한 나에게는 적절하게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 하면서 동학의 이 같은 평등주의에서 자신이 찾는 이상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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