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은 일본과의 강화는 반드시 혼란과 명말을 초래할 거라고 경고했다.
물론 일본을 짐승으로 취급하여 배척하는 태도가 지나친 면이 있지만, 일본의 강압 아래 맺어진 병자수호조약의 부당함과 불평등함, 불리한 굥역조건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명확히 인식하고 일본의 침략성을 간파한 것은 매우 깊은 식견이었다.
역사는 아쉽게도 최익현이 우려한 바대로 되어갔다.
최익현은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고 강화에 반대했지만, 만약 일본이 제국주의를 포기하고 인도를 회복한다면 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고 했다.
평화적 세계 질서를 부정하고 침략해 온다면 일본을 배척할 수 밖에 없지만, 일본이 평화적 세계 질서를 긍정한다면 그들과의 협정이 크게 문제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익현은 상소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일본은 공자와 주자를 높이고 예의를 숭상하여 이웃나라로부터 신임받은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서양 도적의 유혹과 협박에 넘어가 기꺼이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귀국을 대신해 깊이 부끄러워 하는 바이다.
......
귀국이 지금 이후로 이제까지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서양 도적을 엄격하게 금하여 좋고 나쁨의 바름이 신명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다면 이는 전과 같이 서로 우호했던 이웃나라가 된 것이요, 뒷날의 도적 무리가 아니다.
이같이 된 다음에 비로소 우리 나라와 수호를 맺을 수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날로 배를 돌려 돌아갈 것이요, 우리 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음으로써 스스로 패망을 재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익현이 일본의 태도에 따라 우리의 대응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순한 배타주의가 아니라 사를 버리고 정의 질서로 편입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본의 침략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최익현은 일본 정부에 보내는 글에서 일본이 조선에 대에 신의를 배반하였음을 다음과 같이 성토하고 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성이라 하고, 믿음을 지키고 의리를 밝히는 것을 도라고 한다.
사람으로서 성이 없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국가로서 도가 없으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완고한 늙은이의 일상적인 말이 아니다.
비록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들이라 해도 읷을 저버리면 결코 세계에서 자립할 수 없을 것이다.
최익현은 신의를 저버린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다.
여러 차례 임금의 결단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상소에 머물지 않고, 대중의 궐기를 바탕으로 하는 의병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최익현은 송병준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이 모두 죽으면 누가 우리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며 의병운동에 힘을 모았다.
이제 자결로 지조를 지키는 것은 국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최익현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서 의병을 일으키는것이 선비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성공이나 실패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나라를 위하여 ㅈㄱ음도 감수하는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익현에게 의병운동은 선비로서 명분을 지키고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며, 문명인으로서 야만을 물리치고, 조선사람으로서 백성의 불행을 없애는 일이었다.
최익현은 1906년 전라북도 태인의 ㅁ성서원에서 문하생을 모아 강회를 열면서 비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비범한 뜻을 가져야 한다며 의병을 밀으켰다.
최익현의 주장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의병 해산이 내려왔지만, 최익현은 단호히 거부한다.
의병운동이 정당하고 매우 떳떳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의병대에 맞서 일본 경찰대 대신 전주 관찰사 한진창이 이끄는 진압부대를 내세웠다.
이에 최익현은 일본군이라면 결사적으로 싸우겠으나, 같은 민족끼리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하며 의병들에게 싸움을 멈추고 해산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자신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대마도로 끌려갔다.
대마도에서 최익현은 단식투쟁을 하면서 명에로운 죽음을 선택한다.
최익현의 파란만장한 삶은 불의에 온몸을 던져 항거하는 불굴의 의지 그 자체다.
그는 제국주의화한 일본의 침략성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았고 저항운동에 적극으로 앞장섰다.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면서 국민들에게 전한 격문의 한 부분을 읽으며, 나라의 죽음을 잊은, 조선 말의 행동하는 지식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자.
오늘날 우리 국민이 급하게 힘써야 할 일은 천하의 대세를 살펴서 죽음을 기약하면 오히려 살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 뿐이다.
죽음을 기약한 뒤라야 기력을 분발하고, 스스로 마음과 뜻을 북돋으며, 나라 사랑하는 정성이 스스로 용솟음쳐서 마음을 합하는 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 의지하며 기대려는 마음을 물리치고 퇴폐 타락 위축의 습성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간다는 잘못을 고쳐서 당당하게 나아가되 조금이라도 후퇴하지 말며, 차라리 함께 죽을지언정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의 마음이 모아져 하늘이 반드시 도울 것이다.